얼마전 칸 영화제에서 대한민국의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아 세상에 대한민국을 크게 알렸다. 시끄럽기만 한 정치판과 대조적으로 민간부문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야당과 여당 모두 누가 당대표가 되는지에 민감하고 여당은 젊은 당대표를 쫓아내는 모습이고 야당에서는 당대표에 출마하겠다는 국회의원의 의사에 반기를 들며 출마를 자제해야 한다며 목청을 돋우고 있다. 얼마나 대단한 자리인지 모르나 시끄럽기만 하고 과실은 없는 정치판의 모습이 재연되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다.

그런데 뜻밖의 소식이 들렸다. 프린스턴대학교의 한국계 미국인 허준이 교수가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다. 어려운 수학계에서 날고뛰는 외국인들이 무척 많은데 한국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는 점에서 자랑스럽고 허 교수의 인생행로가 남다르게 보여 더더욱 관심이 많았다.

허 교수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부터 한국에서 다녔다. 고등학교에 다니며 야간자율학습이 힘들어 중퇴를 했다고 한다. 이후 검정고시를 통해 서울대 천문물리학부에 입학했고 대학원은 수학을 전공하기 위해 수학과를 택했다. 미국의 미시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계속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하신 모양이다. 현재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이며 한국의 고등과학원(KIAS) 석좌교수를 겸하고 있다.

어린 시절 시인이 되고 싶어 책을 많이 읽었고 인문, 예술, 문학 등에 많은 관심을 가지며 충분한 소양을 쌓았고 이후 수학에 전념하게 되었다고 한다. 본인도 '나는 구불구불한 길을 걸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이 가장 참되고 빠른 길이었다.'고 말했다.

입시교육에 푹 빠져있는 우리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라 생각된다. 입시는 높은 점수가 목표이므로 구불구불하게 가면 안 되고 가장 빠른 지름길을 찾아야 하기에 과외선생님을 찾고 학원을 헤매고 다니는 것이다. 그런데 허 교수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아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든 길인 셈이다.

수학과에서 수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미술을 알 필요가 있는가, 문학을 공부할 이유가 있는가, 기타 인문학을 위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있는가, 이런 관점이 우리의 모습임에 틀림없다. 허 교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구불구불한 길을 마다하고 있다. 따라서 결국은 가장 빠른 길을 걸어가기 어려운 것이 우늘날 우리의 교육이다. 또한 허 교수는 '마음을 여유롭게 가지고 천천히 차근차근 한 발짝씩 걸어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모두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엔 대학 입학시험을 위해 마음도 몸도 종종걸음이고, 대학에 다닐 때에는 군대문제 등 미래에 대해 고민하다 졸업할 즈음이 되면 취업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럴지라도 시류에 급급하지 않고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무척 중요한 지적이다. 특히 대학원에 진학해 무언가에 매달리는 학생들에겐 참 유익한 말씀이다.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한 사람이 가진 지식의 무게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도 대학원에 들어오면 빨리 연구테마를 잡고 거기에 매진해야겠다는 생각, 나아가 조바심이 생긴다. 한 발짝씩 움직이는 대신 걸음을 성큼성큼 유지하려 하고 남의 눈에 띄는 업적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을 갖는다. 이런 마음이 지나치면 남의 것을 표절하고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학자같지 않은' 학자가 된다.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젊은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우선 첫째,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가 무언가 체크해 보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부모님께서 알 수 없으니 스스로 확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천천히 공부를 시작하고 늘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면 문학 사학 철학 등 소위 인문학이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날 허 교수를 만든 인문학적 소양이 중요한 이유라 생각된다. 셋째,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큰 걸음은 과욕이다. 한 발짝씩 나아감에 만족하고 늘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허 교수께 심심한 축하와 감사를 전하며 우리 모두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이 빠른 길'이라는 그의 말을 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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